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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별이 되어 떠나버린 전국 노래자랑 송해 선생님

by woongyi 2022.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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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2년 들어서 가장 슬픈 소식 하나를 전해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세계 최고령 mc였던 송해 선생님께서 6월 8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미 인터넷 뉴스 등을 통해서 이 소식 많이 접하셨을 텐데 송해 선생님이 돌아가시던 그 상황 그리고 그동안 송해 선생님께서 밟아온 발자취 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전달을 해드리겠습니다. 


송해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건 6월 8일 오전 10시 전이었습니다. 
희극인 협회 현재 협회장을 맡고 계신 엄명수 씨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는데요. 
일단 송해 선생님의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르게 됐습니다.


이날 오전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선생님께서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이 됐고 이후 119를 불러서 치료를 했지만 

결국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사실 바로 며칠 전까지 통화를 한 이들도 선생님께서 굉장히 정정했다고 얘기를 하셨거든요. 
세상을 뜨기 바로 전날까지도 개인 활동을 계속 해오셨고요 ..

엄영수 씨는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며칠 전까지 밝게 통화를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지신 걸 들었고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받았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송해 선생님의 타계 소식은 한 예능인 한 연예인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분은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까지 경험한 이 한국 근현대사의 시대의 아이콘과 같은 분이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요. 

 

발자취

선생님의 발자취를 한번 짚어보면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949년 황해도 해주 예술 전문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했는데 바로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을 했고 

결국 미 군함을 타고 부산으로 넘어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1955년 창공악극단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데뷔를 했고요 그때부터 선생님의 방송 인생이 시작이 됐습니다. 
지난해 선생님의 다큐멘터리 영화죠 송해 1927이 개봉을 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혈혈단신 월남에서 어렵게 제 소질과 희망을 찾아다니는 것도 마음이 아팠고 유랑극단 생활을 거쳐서 아픔을 딛고 일어선 것이 향후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큰 아픔이죠. 실향민이 됐고 또 북에 있는 가족들과는 헤어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면서 오히려 향후 살아갈 원동력을 얻게 됐다는 거죠. 
그렇게 당시에는 희극인으로서 영화와 드라마에도 많이 출연을 해오고 다방면에 활동을 해오다가 

1988년 드디어 운명의 프로그램을 만납니다. 


그 프로그램은 모두 알고 계시는 전국 노래자랑입니다.
5대 mc였어요. 5대 mc로서 6년간 진행을 했는데 그러다 1994년에 잠시 하차를 했습니다. 
이때 시청자들의 여러와 같은 성환 속에서 7개월 만에 복귀를 했고 이후 28년째 그 자리를 유지해 왔고 

누적 33년간 전국 노래자랑의 사실상 주인공이었습니다. 


송해 선생님이 전국 노래자랑의 주인공이라고 했는데...

이 주인공 곁에는 항상 그들과 함께하는 이 주인공과 함께하는 이들이 있죠. 
그들은 바로 참가자들이었습니다. 

 

33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국을 돌면서 전국 노래자랑을 외쳤고요 이렇게 만난 사람만 천만 명이 넘습니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을 해 오신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 2015년이었죠...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 특별상을 받았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단순히 진행을 잘하는 mc로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을 하면서 그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인정을 받은 그런 의미의 상이 었기 때문이죠. 


선생님은 생전 항상 스스로 딴 따라임을 자인했습니다. 
이 땅 따라....
연예인들을 굉장히 낮춰 부르는 표현인데 선생님은 그 표현을 거부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나는 이렇게 흥겹게 즐기면서 다른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딴따라라고 자처를 하고 인정을 하고 또 본인을 보고 자라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이 딴따라는 의미가 결코 나쁘지 않은 표현이고 그 자체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계속적으로 가르침을 주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선생님이 돌아가신 직후에 많은 후배들의 추모 열기가 이어졌습니다. 


이상벽 선생님은 송해 선생님과 50년 지기입니다.

원래는 이상벽 선생님 역시 기자 출신이었죠....
기자와 연예인으로 먼저 만났고 이후에는 이제 선후배 방송인으로서 50년을 함께 해왔는데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고향 선배.... 왜냐하면 이상벽 선생님 역시 이북 출신이시거든요. 


고향 선배이자 선친 돌아가신 아버지와도 동갑이셔서 늘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선생님과 소통을 해왔고 

항상 방송 들어가기 30분 전부터 이 묵상을 하면서 평생 무대에 섰지만
매일 새롭게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준비하는 선생님을 통해서 많은 거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이제 좀 쉬어도 좋다는 하늘의 명령을 받으신 거다...

왜냐하면 본인 스스로는 쉼표가 없었으니까요. 
내내 활동을 하면서 이번 주도 나를 기다리고 다음 주도 다른 지역에서 누군가 기다리겠죠.
이렇게 달려오기만 한 송해 선생님께 이제는 하늘이 그만 쉬어도 좋다고 한 것이니 잠시 숨 돌리고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서는 부디 만나고 싶은 어머니를 만나고 오시라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어머니를 만나보시라라는 얘기가 중요한데 사실 송해 선생님을 지탱했던 가장 큰 힘은 가족들이었습니다.
송해 선생님이 전국 노래자랑을 오랫동안 진행을 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뭐냐면??

이북에서 전국 노래자랑 하면서 그럼 공식적으로 북한에 가서 헤어진 가족들과 만나는 그걸 꿈꿔 오셨다는 거죠. 


한순간도 이 어머니를 만나는 것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고요..

이렇게 어머니를 그리면서도 선생님은 항상 가족에 대한 사람이 남달랐습니다. 
몇 해 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서곡이 여사를 비롯해서 두 딸과의 관계도 아주 돈독했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아들을 잃은 슬픔이 있습니다. 
이 한남대교를 건너던 아들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는데 그 때문에 한동안은 한남대교를 건너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지금 이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는 거는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선생님께서 

하늘나라에서는 그토록 기다리던 어머니 그리고 먼저 떠나보낸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선생님께서 

그곳에서도 또 기쁜 마음으로 쉬실 수 있을 거라 주변 사람들이 명복을 빌고 있다는 겁니다. 


참 사람 운명이라는 게 선생님께서는 어느 정도 본인의 이런 떠날 날을 알고 계셨다는 느낌을 받아요.
선생님께서 전공 노래자랑에서 하차하겠다는 의사를 표하셨었죠.??
사실 그 누구도 등 떠민 적 없고 송해 없는 전국 노래자랑은 의미가 없다고 얘기를 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먼저 얘기를 꺼냈을 땐 더 이상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할 수 없는 본인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셨다는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또 너무 안타까운 게 뭐냐면은요 이 모든 상황이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왜 그런 얘기 있잖아요.??

어르신들은 자꾸 움직이고 무언가를 활동적으로 할 때 더 건강하고 이걸 놓는 순간 건강이 상한다고요

이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년 2월 전에는요..
어디 아프다는 얘기 한번 들려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 2020년 초 전국 노래장 야외 녹화가 취소가 됐죠. 
2년이 넘었습니다. 그 사이 지난해에 두 차례 입원 치료 소식이 있었고 올해도 1월과 5월 또 입원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도 받았죠..


최근까지 언론 인터뷰에서도요 그 후유증이 남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셨어요.
본인의 루틴이 너무 확실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내 몸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는 거를 잘 아셨던 거죠. 
그래서 더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전국 노래자랑 녹화를 내가 참여하는 게 쉽지 않겠다라고 했고 전국 노래자랑 드디어 

2년 수개월 만에 야외 녹화가 진행이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참석을 하지 못했죠. 우리도 안타깝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사람은 바로 선생님이었을 겁니다.
선생님이 누구보다도 그 2년 수개월 만에 다시 시작된 전국 노래자랑 현장에서 전국을 외치고 노래자랑이라고 

화답하는 그 기운을 받고 싶으셨겠죠...


그걸 하지 못하셨을 때 느꼈을 선생님의 그 마음 아픔은 사실 우리가 헤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후 각계각층에서 추모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선생님을 지근거리에서 뵙고 굉장히 오랫동안 존경해했던 이분의 글이 저는 참 와닿았는데요. 
바로 개그맨 이용식 씨가 송해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라고 쓴 내용입니다. 


소개를 해드리면은요
1974년 4월 선생님과 첫 만남이 오늘 아침은 선생님과 영원한 이별을...

47년 전 mbc 방송국에서 국내 최초로 코미디 연 맨을 뽑는 날 심사위원으로 맨 끝자리에 앉아 계시던 송해 선생님

스포츠 헤어 스타일의 카랑카랑하신 목소리 지금도 기억합니다.


매주 토요일 생방송 주택복권 추천받은 날 선생님은 준비하시고 쏘세요. 
외치면서 저는 활이 나라와 꽂힌 곳에 번호를 힘차게 외치던 그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선생님께서 출연하셨던 수많은 프로그램을 이젠 그동안 선생님을 사랑해주셨던 시청자 여러분들께 선물로 드리고

천국에 가셔서 그곳에 계신 선후배님들과 코미디 프로그램도 만드시고 그렇게 사랑하셨던 전국 노래자랑을

이번엔 천국 노래자랑으로 힘차게 외쳐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국민들께 주셨던 웃음과 즐거움을 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내려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제가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이 멘트를 하면 가장 좋아하셨죠. 
여러분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가 아니라 원래 4면이 바다였습니다.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송해 그 어른은 바다셨습니다. 
송해 선생님 사랑합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말로도 선생님을 잃은 슬픔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이 선생님은 이용식 씨의 말대로 이제는

천국 노래자랑을 외치면서 또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전하고 계신 겁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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